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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중 꽤 많은 시간을 교회생활에 할애했기에 왜 교회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적이 있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러한 노력들은 의미 없는 무용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꽤 기특한 청소년이었다. 중학생때 반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수업 끝나고 주 2회 모여서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함께하고 싶었다. 어떻게 같이 성경 공부할 수 있는지 친구에게 물으니 지도하시는 선생님께 말씀드려 본다고 대답했다나름 순종적인 생긴 얼굴을 하고 있어서인지 선생님은 나를 만나보고 흔쾌히 승낙하셨다이렇게 4명이서 매주 화, 목 학교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과학실 같은 곳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성경 말씀은 학교 밖 전도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다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님이 오심을 구약에서 계속 예언하고 있으며마침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음을 차근차근 배웠다.  그동안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통해 부분적으로 배우던 성경을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 내용들이 머리속에서 구조화되는 느낌이었다재미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씀을 전하던 전도사님은 "다락방"이라는 교단에서 오신 분이셨다학교 선생님 역시 다락방 교인이셨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다락방은 이단이니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왜 이단인지 물었더니 어머니께서는

 

처음은 좋은데 결국 다락방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쳐

 

라며, 처음에는 모여서 성경공부 하는 모임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다락방만으로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 이단이라는 이유였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의 말씀이 절대선()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같이 공부는 하되 다락방 교회만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럼에도 불구 매주 일정시간 친구들과 모여 성경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자체가 즐거웠다. 공부 뿐만 아니라 신앙서적도 서로 돌려 읽었다. 당시 기독교 서적이라는 것을 읽어 본적도 없거나 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말씀 전하시는 전도사님도 중학생들이 열의를 갖고 성경공부를 하니 매주 오시는 길이 즐겁다고 하셨다. 전도사님은 기독교의 핵심교리로 인간이 하나님께 끊어진 관계를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시 이어 주셨으며, 이러한 예수님을 "영접"해야함을 가르쳤다. 영접예수님이 내 죄로 돌아가심을 믿고 영접하는 것교회생활을 하며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이내 이 단어가 핵심이라는 것을 깨우쳤다개안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새로운 세상을 본 느낌이었다. 교회에서 매주 듣는 말씀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말씀 시간 중 딴짓 하는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게 느껴지고, 다락방을 통해 체계적으로 말씀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말씀을 전하시던 전도사님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바빠 지셨다. 서울 다녀왔다는 얘기를 자주하셨다. 전도사님께서는 드러머셨다. 자신이 드럼연주를 한 CCM 음반을 들어보라며 주시기도 했다. 어느 날 다른 사역을 위해 떠나신다며 작별인사를 하셨다. 전도사님 이후 선생님께서 말씀을 전해 주셨다. 30대 초반 정도되는 여 선생님이셨는데, 신앙적으로 우리가 잘 성장하기를 항상 기도해 주셨다. 전도사님에 비해 말씀 전하는 것은 서툴었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전도사님이 가신 후 사실 말씀을 전하기 보다 우린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결할지에 대해 서로 토의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을 마치는 봄방학 때였다. 선생님마저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다며 작별인사를 하셨다아쉬웠지만 당시 사춘기 청소년이었고 표현이 서툴러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할 줄 몰랐다. 그저 담담히 '안녕히 가세요'라며 인사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의 신앙생활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셨는데 지금은 성함도 기억나지 않아 찾아볼 수 도 없다. 그냥 그렇게 잊혀졌다.

 

 성경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지만 이때 성경공부는 평생 신앙생활의 자양분이 되었다. 성경을 공부하며 기독교서적 뿐만 아니라 CCM도 열심히 들었다. 김명식, 소리엘, 예수전도단과 같은 CCM가수들의 음반테이프를 사서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다. 일반 대중가수들보다 CCM 노래가 더 좋았다.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CCM을 따라 부르고 교회친구들과 함께 불렀다. 가사가 좋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즐거웠다찬양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 찬양하는 것도 즐거운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고 느끼니 일석이조였다되돌아보면 그때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았다. 청소년기 즐거운 추억들은 모두 교회에서의 기억이었다. 그때 친구들이 그립다. 아직 연락이 닿는 친구도 있어 당시 함께 찬양했던 얘기들을 하 곤한다. 아마 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평생 같은 주제로 얘기할 것이다.

 

 그렇게 뜨겁던 청소년기 신앙생활은 대학을 가며 급속히 식었다. 세상은 재미있었고 술과 친구들은 삶의 양념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신앙의 뿌리가 약했기 때문에 금방 뜨거워진 반면 금방 식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뜨거웠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맘때쯤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님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아무리 울며 기도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금방 기도를 들어 주실 것 같았던 하나님이었지만 진로며, 가족이며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깨닫으니 교회생활을 더 이상 열심하 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시간 날 때 마다 가는 곳이 되었다주일마저 교회가지 않으면 마치 죄를 짓는 마음이었다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갔다종교는 기독교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실을 믿는 약간의 고집같은 것이 있었다. 누가 물어보면 기독교라고 떳떳이 얘기했지만 일종의 고집처럼 기독교라고 답했다.

 

당시 나의 신앙은 양심의 가책, 고집부모님에 대한 순종이 복합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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