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이라는데, 정작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거.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크리스마스나 결혼식장에서 몇 구절쯤은 들어봤을 텐데, 막상 "창세기가 무슨 내용이야?" 물으면 다들 대충 얼버무린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말 처음, 창세기 1장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짚어가 보기로 했다. 신학적으로 파고들자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로서 한번 제대로 알아보자는 거다.
시작은 이렇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첫 문장부터 스케일이 남다르다. 근데 바로 다음 문장이 재밌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나온다. 처음부터 완벽하고 근사한 세상이 아니라, 뒤죽박죽에 텅 비고 캄캄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하게 위안을 받았다. 이사 온 첫날 텅 빈 방바닥에 앉아 있던 기억, 헤어지고 나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던 밤 같은 게 겹쳐서다. 세상조차 처음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상태였다는 거, 그리고 거기서부터 뭔가가 시작됐다는 거.
그 다음부터는 순서가 착착 진행된다. 빛과 어둠을 나누고, 하늘을 만들고, 땅과 바다를 가르고 식물을 심고, 해와 달과 별을 걸고, 물고기와 새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동물과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일곱째 날엔 쉰다. 순서를 보면 뭔가 되게 계획적이다. 무대부터 먼저 만들고 거기에 채울 것들을 나중에 넣는 식이랄까. 즉흥적으로 뚝딱 만든 게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완성해가는 느낌이다. 큰일을 앞두고 계획표부터 짜는 사람 마음 같기도 하다.

사람을 만드는 대목도 눈에 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다른 생물들은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사람만 유독 "형상대로"라는 표현이 붙는다. 뭔가 특별 취급을 받는 느낌이랄까. 2장에서는 이 사람 만드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줌인해서 보여주듯 다시 설명한다. 흙으로 사람을 빚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사람을 에덴이라는 동산에 살게 한다. 강이 흐르고 온갖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 말 그대로 아쉬울 게 없는 곳이다. 동산 한가운데는 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하나는 생명나무,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다. 이 두 번째 나무 얘기는 다음 편에서 제대로 다룰 사고뭉치니까 일단 이름만 기억해두자.
그런데 재밌는 게, 이렇게 완벽한 환경을 다 갖춰놓고도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세기 2:18). 먹을 것 부족함 없고, 할 일도 있고, 날씨 걱정도 없는 곳인데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이 부분이 나는 제일 와닿았다. 좋은 직장, 편한 집,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을 다 갖췄는데도 퇴근하고 혼자 있는 밤에 이상하게 헛헛했던 기억,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 조건이 아무리 완벽해도 옆에 진짜 통하는 사람 하나가 없으면 그게 그렇게 허전하다는 걸, 창세기는 사람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벌써 짚어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재운 뒤 갈빗대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든다. 잠에서 깬 아담이 여자를 보자마자 한 말은, 이건 내 뼈에서 나온 뼈고 내 살에서 나온 살이라는 감탄이었다는데, 뭔가 첫눈에 반한 사람의 대사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두 사람은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2장은 끝을 맺는다. 숨길 것도, 재고 따질 것도 없는 상태. 지금 우리가 아는 관계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평화가 어떻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지, 그 유명한 선악과 이야기를 다뤄볼 참이다. 솔직히 나도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보니 좀 다르게 읽히더라. 천천히, 순서대로 따라가 보려 한다.




















